수필/사회이슈

법의 울타리, 그 경계의 모호함

인민탱 2020. 4.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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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는 여느 우리나라의 10대처럼 학창 시절을 보내며 학업에 힘썼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부모님이 원해서였을 수도 있고, 자신의 꿈이 있어서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학창 시절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부모에게 손 벌리기 싫어서였을지, 아니면 아르바이트 또한 지겹던 학창 생활을 마친 뒤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제삼자인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에 남은 삶에는 꿈과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밝은 미래는 보지 못하게 됐다. 

 


#2


 A는 바로 얼마전 있었던 대전 중학생 렌트카 사건의 피해자이다. 가해자들은 미성년자임에도 렌트카를 빌려 폭주하다 아르바이트 중이던 어느 젊은 청춘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미성년자란 이유로 운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가해자들은 당일 귀가하였고, 조사 과정 중에도 가해자들은 활발한 SNS 활동을 보여주며 반성하는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0세 이상에서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다. 교화를 목적으로 한 소년원 보호처분과 피해자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처벌이다. 촉법소년의 소년원 보호처분은 전과에도 남지가 않는다. 가해자들에겐 나중에 술안주 거리밖에 되지 않을 듯한, 정말이지 형편없는 처벌이다.  

 

 안타깝고, 분노했다. 나를 비롯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똑같았을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사건들을 접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만큼 그 책임을 담당하는 법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법이란 울타리는 가해자의 인권에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두순 등 흉악범의 사례는 차치하고, 청소년 법만 해도 그렇다. 집단 따돌림 문제, 비행 청소년 등이 바르게 자라나야할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살 날이 많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반성을 유도하고 죗값 또한 가벼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미성년자들은 너무나도 세상을 잘 알아버렸고, 이번 사건처럼 미성년자란 이유로 촉법소년이라는 권리를 너무나도 쉽게 누리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 반성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의 참여자가 100만 명에 가까워졌다. 나만 분노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던 것이다.

 

 변화의 여지가 없는 이들에게도 면죄부는 주어져야하는가?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같은 사람인데 왜 이 법은 가해자의 인권과 미래만 생각하고 현실에 남겨진 피해자 및 그들 주변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 건가? 청소년 문제가 오랫동안 쉽게 해결되지 않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이런 모순을 갖고 있는 청소년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겨진 피해자에게 진정한 위로는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법의 울타리,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청와대 국민 청원글에 동의한 것뿐이었다.

 오늘도 나는 분노했고, 또한 분노한다.


PS. 이번 사건 피해자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과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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