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LIST
반응형
SMALL
반응형

 

“... 네 예약 내일로 옮겨 드릴게요. 내일은 꼭 오세요, 고객님!”

 

‘...’

...’

 

뭔 한숨을 땅이 꺼지라 쉬어?”

 

아니 저번 주부터 커트 예약을 계속 다음 날로 미루는 손님이 있어서요.”

 

아 엊그젠가 얘기한 그 손님?”

 

네 원장님. 이제는 항상 전화 올 때마다 이 손님일까 봐 신경 쓰인다니까요. 어제는 배 아파서 안 된다더니 오늘은 허리가 아프데요.”

 

“코로나 시국에 장사 잘 되는 게 어디야. 딱히 캔슬 놔서 폐 끼치는 것도 아니고.. 사정이 있겠지. 선영 씨가 그러려니 해.”

 

네 원장님..”

 

 역시나 원장은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미용실의 오후는 언제나 동네 아줌마들로 가득 차곤 했다. 이런 바쁜 와중에 걸려오는 예약자 이름이 ‘유생기’인 고객의 전화는 충분히 귀찮았으나, 문득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 또한 들었다.

 

선영 씨, 전화 끝난 김에 여기 고객님 드라이 좀~”

 

네 원장님~”

 

 이런 궁금증도 잠시, 다시금 바쁜 업무에 발길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그 후에도 예약 변경 전화를 세 번이나 더 받은 후의 토요일 오후였다. 매일 2시 근처에 전화가 왔기에 기다리던 차에 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약하셨어요?”

 

“... , ...”

 

 눈을 아득히 덮어 마스크 근처에 닿아있는 앞머리와 삐쩍 마른 어깨에 걸친 장발을 소유한 손님이었다. 7월 중순인 더운 날씨에도 검은 긴 팔을 입은, 무언가 특이한 사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질문을 던졌다.

 

, 혹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머뭇거리는 눈빛을 본 사내는 오히려 당황한 듯 보였다.

 

“유생기 님 맞으세요? 오늘 세시 예약하셨죠?”

 

... ... .”

 

고객님 일찍 오셨네요! 원장님 예약하셨죠?? 지금 원장님 두시 반 손님 커트하고 계셔서요. 저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 .”

 

소지품 보관해드릴까요?”

 

, 아뇨.. 괜찮아요.”

 

 시종일관 조용하던 사내가 처음으로 큰 동작을 보이며 거절했다. 이름처럼 생기가 넘치진 않는 사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전화상에서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자라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고객님, 기다리는 동안 차 한 잔 드릴게요. 저희 아이스티, 녹차, 커피 있는데 어떤 게 좋으세요?”

 

“... ? , .. 괜찮은데..”

 

아 혹시 카페인 들어간 거 싫어하세요? 저희 주스도 있어요.”

 

, 그게, ..”

 

 눈은 보이질 않고 마스크까지 쓴 통에 목소리 말고는 알 수가 없는 터라 답답했다. 다만 팽팽하게 당겨진 마스크 끈 탓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발갛게 달아오른 귀는 확인할 수 있었다.

 

“... 커피.. 냉커피 한잔 주세요.”

 

, 좀만 기다려주세요~”

 

 기나긴 침묵을 기다리기로 한 찰나에 사내의 입이 떨어졌고, 그 말을 들은 곧장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여기 냉커피 나왔습니다!”

 

, ..”

 

 이 사내와는 정말 말 붙이기 어렵겠구나 생각한 후 다시 계산대로 향했다.

 

 

 

어휴 총각, 얼굴이 엄청 창백하네, 무슨 일 있어?”

 

“.. , ? , .. 저요?”

 

아니 얼굴이 희멀건 해서 어디 아픈 줄 알았지~ 보니까 손도 희고 곱네. 귀하게 자란 총각인가 보네 호호호~ 몇 살이야 총각?”

 

저요? , 그게..”

 

 커트 중인 한 아주머니의 질문 공세에 힘들어하는 사내가 딱하다 생각했다.

 

에이 희선 엄마, 집에 딸 둘 밖에 없다고 남의 집 귀한 자식 귀찮게 하면 쓰나~”

 

아냐 김 원장, 난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역시나 좋은 타이밍에 등장한 넉살 좋은 원장이었다. 유생기라는 사내 못지않은 장발에 잘 정돈된 콧수염까지. 외모는 예술가상인데 능글맞게 고객들을 상대하는 원장을 볼 때면 역시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영 씨, 여기 고객님 드라이~”

 

, 가요~”

 

 원장의 토스를 받아 고객을 드라이해주고 나니 어느덧 장발 사내의 차례가 됐다. 마침 손님들도 없던 차여서 원장 곁에서 배우면서 보조해주기로 한터라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우리 가게 처음이시구나. 머리 엄청 기시다~ 저도 이만큼 기르기 힘들었거든요. 기르느라 힘들었죠?”

 

.. , ..”

 

 마스크를 벗은 사내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었을까? 귀는 여전히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긴 앞머리를 좌우로 넘겨 보인 사내의 눈은 초점 없이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객님 지금은 좀 불편하겠다, 그죠? 앞머리가 너무 질서가 없네. 어떻게 시원하게 잘라드릴까? 아니면 적당히 다듬어서 기르실래요?”

 

.. .. 그게..”

 

 갈 곳을 잃은 눈동자와 사뭇 초초해 보이는 인상이 어딘가 불편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 머리를 짧게, 짧게 자르고 싶어요.. .. 시원하게 말이죠. 눈썹 위로 기장을 쳐 주세요.”

 

 그러나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듯 사내는 이내 미용실에 온 이후로 가장 긴 문장을 원장에게 뱉으며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알았어요. 여름인데 시원하게 올려볼게. 왁스 바르시나 혹시? 포마드 할 정도로만 쳐 드릴게요.”

 

“... 포마드가 뭐죠?”

 

아 포마드 모르는구나, 선영 씨 태블릿 PC 좀 가져와줘 봐~”

 

네 원장님

 

 계산대에 있던 업무용 태블릿 PC를 갖다 주자 원장은 이내 사진첩의 사진들 중 포마드 머리를 한 고객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가르마 타서 이런 스타일로, 지금 머리 엄청 길어서 좀 아까울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남자는 포마드가..”

 

“... 이 머리, 좋아요.. 이걸로.. 이걸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금방 시원하게 깎아 드릴게요.”

 

 이내 확신에 찬 사내의 대답을 들은 원장의 손이 더욱더 확신에 찬 듯 가위로 향했다. 중간중간 얘기를 하면서 투블럭으로 방향성을 잡고 옆머리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미용은 손이 아닌 장비가 한다던 원장의 평소 언행답게 찰칵이는 가위 소리가 청량했다. 그와 함께 뭉텅이며 잘려가는 긴 머리카락들이 내 것도 아닌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내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긴 머리 뭉치들을 모아놓았다.

 

위이잉, 위이잉

 

 이내 어느 정도 기장이 잡히자, 옆머리를 이발기로 쳐올리기 시작한 원장이었다.

 

머리 되게 오랜만에 자르시나 보다~ 이만큼 그냥 기르기도 힘들었을 텐데, 무슨 사연이 있는가요?”

 

.. .. 그게

 

“... 아녜요, 얘기하기 어려우면 얘기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좀 입이 방정이다 그죠? 미용하다 보면 심심하잖아요. 고객님이 이해 좀 해 주세요.”

 

, , .”

 

 찰칵찰칵,, 위이잉 위이잉. 가위와 이발기 소리만이 고요한 미용실에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질서 없이 요란하게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이 대비돼 보였다. 미용보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처음 들어왔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사내의 모습이 사뭇 신기했다.

 

선영 씨, 고객님 샴푸 좀 해줘요.”

 

, 고객님 저 따라오세요~”


 

“... 목 힘 빼시고요, 눈에 수건 덮어 드릴게요.”

 

 샴푸를 하다가 보인 두피 속 곳곳에 빈 부분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머리가 길 때는 그저 숱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내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해서 그랬을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고객님 좀 더 다듬을 거고요, 혹시 오늘 어디 나갈 일 있으세요?”

 

, 아 아뇨.”

 

아 왁스 좀 발라드리려고 했지. 어디 안 나가셔도 앞으로 어떻게 세팅해야 할지 알려주려고요. 왁스 해 드려요?”

 

.. , 해주세요.”

 

 짧은 마무리 커트가 끝나고, 남은 물기를 말리며 머리를 본격적으로 올린 다음 하드 왁스를 야무지게 손에 비비기 시작한 원장이었다. 삐져나오는 한 올까지 세심하게 다듬어주는 원장을 보니, 상당히 프로페셔널 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평소에 잊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지막에 스프레이를 뿌릴 때 나는 향기가 사뭇 향긋하게 느껴졌다.

 

다 됐습니다. 고객님. 이제 눈 떠도 돼요. 스프레이 눈에 안 들어갔죠?”

 

“...”

 

 사내가 조심스레 눈을 떴고, 한동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 먼 곳을 응시하는 듯했던 눈은 어느새 초점을 되찾은듯했고, 그 눈은 조금씩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선영 씨, 고객님 눈썹 좀 마지막으로 다듬어 줘~”

 

, 고객님 눈썹 다듬어 드릴게요.”

 

 사각사각, 눈썹 칼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이발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찰나에, 어떤 기척을 느끼고 이내 손을 내려놓게 됐다.

 

“... 고객님?”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사내를 보곤 당황했으나, 이내 준비라도 한 듯 냉 녹차를 들고 온 원장을 보고 잠시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좀 덥죠? 이거 마셔요, 시원하게 타 왔어요.”.”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사람을 최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슬퍼서만 우는 것 같다기보다는, 뭔가 슬프면서도 개운하게 쏟아내는 느낌의 울부짖음이었다. 원장이 준 냉 녹차를 마시며 감정을 추스른 사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나왔어요. , 집을요. 방에만 있었거든요.. 몇 년을. 정말 나, 나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었어요.. 긴 머리가 너무 답, 답답했거든요.”

 

 적막감이 흐르던 미용실을 사내의 독백이 채우기 시작했다.

 

“... 근데 막상 나오려고 하니 무, 무서웠어요.. 사람들, 사람들을 너무 오래 못 봐서.. 그래서 계속 미뤘어요.. 계속, 계속 전화해서 그.. 미안했어요.”

 

 이런 사연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계속 오는 전화에 짜증이 났었고, 어떤 진상인지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자신이 순간 후회됐다.

 

잘했어요, 얼마나 멋져. 지금 정말 멋진데, 이 머리로 뭐하고 싶어요?”

 

“엄마, 엄마랑 외식 하러 갈 거 에요.. 너무.. 너무 고마워요. 원장님...”

 

그래요. 오랜만에 어머니랑 맛있는 거 먹고 기운 차려요.. 앞으로도... 이 용기, 잊지 않길 바랄게요. 생기 씨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원장님..”

 

 원장이 눈썹 칼을 가져간 뒤 손짓했다. 마무리를 하겠단 뜻으로 대충 알아채고 계산대로 향했다.

 

“... 고객님 오늘 커트 만 팔천 원 나왔고요...”

 

 잠시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다가 이내 정리하고 얘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다음 달 커트 예약 해 드릴까요?”

 

“예, 해 주세요.”

 

 들어올 때와 달라진 건 머리 스타일 뿐이었지만,, 이전과 다르게 생기가 가득 찬 눈빛은 사람을 달라 보이게 했다.

 

, 그러면 818, 시간은 세시가 편하실까요?”

 

, .”

 

18일 오후 세시 예약해드릴게요. 꼭 오세요, 고객님!”

 

, 꼭 올게요... 저 그리고..”

 

, 말씀하세요.”

 

.. 제 그.. 머리카락 자른 거 좀 갖고 갈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고객님. 제가 안 그래도 모아뒀는데, 긴 것들만 모아서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일부였던 긴 머리카락 뭉치를 들고 있는 사내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그리고 그것을 꽉 쥔 채로 미용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꽤나 당당하게 느껴졌다.

 

“... 그 내가 미용을 하면서 말이야, 참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돼. 어떻게 보면 서비스직이잖아 우리도? 그러면서 참 여러 군상들을 보게 되고 뭐랄까, 사람을 보는 눈이 나도 모르게 생기게 돼.”

 

 어느새 왔는지 원장이 옆에서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선영 씨도 이 일에 본격적으로 몸 담그면 느끼게 될 거야. 그래서 뭐랄까,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두피에 땜빵이 날 정도의 스트레스, 얼마나 스트레스겠어 은둔 생활이. 자기도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쉽게 되지 않아서 그 오랜 시간을 지속해왔을 거고, 그 연쇄를 끊는 결정과 행동에 옮기는 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이 드네.”

 

그러게요. 뭔가 되게 보람찬 일을 하셨네요, 원장님.”

 

그러게... 사회가 문제지 사람이 문제 있겠나 싶어, 저런 거 보면. 그래서 말인데 선영 씨, 오늘 미용실 사람들이랑 일찍 마치고 한 잔 하러 가려는데, 갈래?”

 

, 저 오늘 남자 친구랑 약속.. 아니 근데 원장님, 저번 주에도 회식했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자 여러분 오늘 선영 씨 빠지니까 소고기 먹으러 갑시다!”

 

아니 원장님, 너무 하시네요 진짜!”

 

 애써 찡그려본 표정과는 다르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따가 남자 친구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단편소설 - 예약전화(21.08.26)


 

PS. 초 연결 사회인 지금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유명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존재하듯, 이런 사회 속에서도 상처받고, 적응하지 못하는 등 제각각의 이유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미용실을 소재로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전부 공감할 순 없겠지만, 이 글을 통해 심심한 위로와 응원이 됐으면 하는 저의 마음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댓글과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LIST

'수필 >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리한 세상 <21.07.08>  (0) 2021.07.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