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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에볼라, 사스 등의 전염병 사태를 겪었지만 코로나 19만큼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일상 속을 파고든 녀석은 없었다. 그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전염병 사태들이었는데,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고, 덕분에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가졌던 친구들과의 술자리, 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한껏 취기 오른 목소리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거닐었던 강변 산책로. 이런 당연했던 일상들이 말이다. 그리고 방랑벽이 있는 나에겐 여행 또한 그러했다. 때문에 더욱더 그리워지는 지난 1박 2일의 포항 여행이다. 

 일을 모두 끝마치고 난 금요일 저녁. 다시 시작될 주말에 설레고 흥분해 있어야 했지만, 아무런 일정 없는 주말은 나를 오히려 차분하게 만들었다. 항상 그랬듯 답이 정해져 있는 고민을 할 찰나였으나, 이전과 다른 점은 나에게 차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에 한껏 어질러진 방 안을 살펴보다 내 눈에 띈 것은 먼지 쌓인 미러리스 카메라 가방이었고, 딱히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 카메라를 구입한 친구가 생각이 나버렸다. 아무래도 그 친구의 카메라가 내 것의 처지와 같아질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아침 포항으로 향했다. 

 드라이브가 하고 싶어서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울산에서 포항까지 고속도로를 안 타고 굳이 먼길을 돌아갔지만, 내리막길을 가면서 보이던 그 넓고 푸르렀던 수평선과 꼬불꼬불한 와인딩 코스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나. 제일 먼저 도착한 구룡포에서 바로 요깃거리부터 찾은 두 남자였다. 도착한 시간이 꽤나 적절하기도 했고, 구룡포 시장을 거닐다 본 대게라면집이 나를 사로잡기도 해서 그랬다. 제철인 과메기 조금과 함께 나온 대게라면과 물회를 먹고 나니 이미 포항을 다 경험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가게를 나와서도 대게라면 집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거닌 구룡포 부근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 옛날 거리를 재현한 듯했다. 좁은 골목길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에겐 꽤나 만족스러운 거리였다.

 일본인 가옥 거리에서는 구룡포 사람들이 전부 모인 듯 꽤나 많은 인파들이 있었고, 그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덕분이었다는 것은 주변에서 발견한 안내 간판 덕분이었다. 드라마를 별로 안 보는 편이라 이 곳에 오기 전 미리 드라마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구룡포 구경을 마친 뒤 앞 차의 꼬리를 물고 호미곶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기도 했고, 코스가 다들 비슷했었는지 유달리 차가 많았다. 매섭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코트 차림으로 오길 잘했다 생각하고 포항에 오면 모두가 찍어가는 그 '손'을 찍기 위해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상생의 손'이라 불리는 그것보다는 바람을 등에 엎고 암초에 부서지는 파도를 더 많이 감상했었다. 어쨌든 '깃발 꽂기에 성공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끼고, 숙소가 있는 죽도시장으로 향한 것은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시장이라 장사를 일찍 마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던 두 남자는 역시나 깃발 꽂기를 위해 과메기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포항에 와서 제철 과메기를 못 먹고 갈 순 없다 생각하고 사간 것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다른 팀 또한 사온 까닭에, 그 좁았던 식탁을 싱그러운 바닷냄새 물씬 나는 과메기로 그득히 채우게 됐다. 내년 과메기는 쳐다도 안 볼 정도로 먹게 된 그 좁은 방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출발해서 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공유하며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덕분에 아침에 해돋이를 보러 가자 약속했던 어느 운전자는 그 새벽 수어 번 울린 전화 벨소리에도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 좋은 추억을 남겨준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의 친절했던 사장님께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옛날 여관을 개조해 만든 거라곤 생각 안될 정도로 깔끔했고, 포근한 조명 빛이 감싸주는 인테리어들도 감성 넘쳤다. 포항에 다시 오면 꼭 들를 거라 생각하고 다시 일상에 복귀한 후 내가 접한 뉴스가 바로 신천지 신도인 31번째 환자 소식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에게 여행은 없었다.


 답답하고, 점점 무뎌져 가는 일상 속 더욱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포항 여행이었다. 나는 이토록 소중했던 일상을 그저 당연하게 여겼었다. 다시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내게 주어지는 그 시간들을 좀 더 특별하게 여기게 될 것 같다.

 또한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지금의 아련하고 씁쓸한 이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내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단계가 완화된다고 하는데, 아무쪼록 다들 현명한 대체로 우리의 소중했던 '평범한 일상'에 가까워질 수 있었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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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 : 네이버

N예약 리뷰 50 · ★5 · 포항 죽도시장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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